패권 기술의 맹목이 안보 자멸을 부른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대중국 패권을 이유로 AI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혔으나, 민간 기술이 이란과 후티 반군의 무기 개발에 악용되는 역설이 드러났다. 패권 경쟁을 빌미로 안전 통제를 유예한 결과 초국적 자본의 이익 뒤로 안보 위협이 외주화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에 갇힌 맹목적 패권 질주를 멈추고 고위험 기술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책임과 다자 규범을 확립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기술 통제를 유예한 패권 경쟁은, 역설적으로 적대 세력의 손에 정밀한 흉기를 쥐여주며 안보 자체를 자멸로 몰아넣는다.
패권 담론이 은폐한 기술 통제의 붕괴
2026년 9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인공지능 패권을 내어줄 수 없다며 정부 차원의 개발 규제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다수 언론은 이를 '패권 경쟁의 결단'이나 '국가경쟁력 수호를 위한 선택'이라는 익숙한 틀로 포장해 전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영 논리 프레이밍은 기술 통제의 실패라는 심각한 구조적 착시를 은폐한다. 적성국을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감시 체계를 걷어내는 순간, 정작 그 기술이 누구의 손에 쥐어져 어떤 파괴를 낳는지에 대한 통제권은 증발한다. 세계를 진영 대결로 양분하는 언론의 안이한 도식은, 규제의 공백 속에서 자라나는 초국적 기술 자본의 무책임한 폭주를 가리는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사유화된 기술 권력과 외주화된 안보 비용
'국가경쟁력'이라는 허울 뒤에는 빅테크와 워싱턴 권력 엘리트의 견고한 야합이 자리 잡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은 안보 수호의 전위대를 자처하며 막대한 자본과 독점적 권력을 누리고, 정부는 패권 유지를 이유로 이들에게 면책 특권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들이 독점한 초과 이윤과 달리, 기술 남용에 따른 파괴적 비용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지대로 철저히 외주화된다.
9월 13일 드러난 사실은 이러한 공생 관계의 파탄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이란과 후티 반군은 서방 민간 기업의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해 미 군함을 표적화하고 극초음속 미사일 유도 시스템을 코딩했다. 9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동서 송유관이 드론 피격으로 중단되고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통제권이 위협받는 배후에는, 서구 자본이 방치한 알고리즘이 비대칭 살상 무기로 둔갑한 참혹한 역설이 도사린다. 기술 독점의 이익은 소수 기업의 금고로 들어가지만, 안보 파탄과 공급망 마비의 고통은 최전선의 병사와 평범한 세계 시민의 몫으로 전가된다.
죄수의 딜레마가 낳은 규제의 무력화
혁신을 위해 안전을 유예하자는 개발론이나, 패권 경쟁 중에도 최소한의 규제는 유지하자는 식의 기계적 절충론은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나태한 도피다. 미국 상원이 뒤늦게 대량살상무기 악용 방지를 위한 인공지능 규제 법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국경을 초월해 흐르는 알고리즘의 확산을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더욱이 9월 13일 중국이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개도국을 겨냥한 독자적 인공지능 생태계 지원을 선언하며 세를 규합하는 현실은, 기술 패권 경쟁이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죄수의 딜레마에 갇혔음을 증명한다. 상대에 뒤처지면 끝장이라는 불신 속에서 국가 안보를 내세운 기술 경쟁은, 도리어 적대 세력의 살상력을 키워 자국의 안보를 무너뜨리는 모순적 함정을 완성했다.
공론장의 결단과 주체별 책임의 경계
지금 공론장이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패권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인가"가 아니다. "패권 승리라는 신기루를 좇기 위해 문명을 파멸로 몰고 갈 통제 불능의 괴물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어야 한다. 승자 없는 치킨게임 앞에서 안보라는 이름의 무책임한 방종을 멈추고 각 주체는 명확한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 행정부는 모호한 국가경쟁력 수사 뒤에 숨어 빅테크에 면책 특권을 쥐여주는 입법 태만을 중단하고, 무기화 전용 가능성이 확인된 거대 모델에 엄격한 사법적 제조물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 빅테크 기업은 혁신이라는 명분 아래 지정학적 위험을 방치해 온 무임승차를 멈추고, 위험 알고리즘 차단 내역을 공론장에 투명하게 보고하는 독립적 외부 감시 체계를 수용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산업계 역시 미·중 갈등의 공급망 균열 속에서 맹목적인 진영 논리에 편승할 것이 아니라, 고위험 인공지능의 군사적 전용을 차단하는 다자간 안전 규범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1
민간 빅테크의 고성능 인공지능이 적대국의 비대칭 무기 개발에 악용될 때, 개발 기업에 어느 수준까지 법적 제조물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고려할 점: 기술 혁신과 오픈소스 자율성을 위축시키지 않는 기준과, 안보 피해를 야기한 알고리즘 방치에 대한 징벌적 배상 책임 사이의 균형점을 검토해야 한다. - 2
미·중 패권 경쟁의 죄수의 딜레마 속에서, 개별 국가의 일방적 규제가 자국 산업만 도태시키는 역효과를 피하려면 어떠한 다자간 거버넌스가 작동해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고려할 점: 냉전기 핵 비확산 조약(NPT) 모델이 무형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영역에서도 실질적인 상호 검증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현실적 한계를 짚어보아야 한다. - 3
에너지 인프라와 지정학적 요충지를 겨냥한 비대칭 드론·AI 복합 위협 속에서, 대외 의존형 국가는 기술 안보와 에너지 안보의 결합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고려할 점: 해상 수송로 봉쇄에 따른 전통적 공급망 위기와 인공지능 기반 비대칭 전력 확산이라는 신흥 안보 위기 속에서, 독자적 회복탄력성을 점검해야 한다.
지금 보고 계신 페이지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메일은 선택입니다.
/opinion/in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