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이틀 새 이란 라라크섬과 반다르아바스 일대를 폭격했고, 그 사이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사우디와 한국 유조선이 피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세게 때리겠다"며 공습을 이어가면서도 해협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이 모순이야말로 지금 국제 정치의 본체다. 양측의 전쟁은 승복을 강제하는 싸움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더 나은 자리를 뺏기 위한 무력 시위이며, 포탄이 오가는 동안에도 딜의 창은 닫히지 않았다.

이란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미국이 지난 6월 체결한 종전 양해각서를 이행하면 즉각 상응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란이 미국에 잠정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것도 같은 언어다. 공격 명령과 협상 제안이 하루 안에 함께 나오는 것이 이 전쟁의 문법이다. 우크라이나도 같은 구도 위에 있다. 러시아는 키이우를 엿새 연속 때려 최소 열두 명을 죽였고, 유럽의 응답이라고는 방공망 부족을 논의하는 국방장관 회의가 전부였다. 무력이 절박해서가 아니라 계산돼 있기에 이어지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틈에서 중국이 자리를 넓힌다. 핀란드 대통령은 중국이 러시아의 핵 사용을 막겠다고 비공개로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방아쇠는 워싱턴과 모스크바가 쥐고 있지만, 브레이크를 내민 손이 베이징이라면 전후 질서의 판은 이미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이 딜의 전쟁이 항상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세계 유류의 목구멍이고, 유조선 한 척이 가라앉으면 유가는 그 누구의 계산에도 따르지 않는다. 이란 자국 언론이 중동 내 미군 시설을 겨냥한 '결정적 작전' 개시를 선언한 지금, 사다리에는 아래로 내려올 단계가 더 많다. 피격 선박이 사우디와 한국 소유라는 사실은 이런 전쟁의 대가를 중립국이 먼저 치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준비에 착수하고 6.25 미군 유해 공동발굴을 제안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데서도 같은 문법이 읽힌다. 여러 전선에 몰린 미국이 북한과도 딜을 만들려는 것인데, 그 조건을 정하는 자리에 서울이 없다면 한국은 주체가 아니라 객체가 된다.

정부는 호르무즈 유조선 피격을 해운 사고가 아니라 국가 안보 사안으로 다뤄야 한다. 유가 충격에 대비한 비축유 방침과 대체 조달로를 지금 점검하고, 해협 호송 문제를 미국과 즉각 협의해야 한다. 대북 접촉이 재개되더라도 의제와 순서를 워싱턴의 일정에 맡기지 말고 한미 공조의 틀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전쟁이 딜의 카드로 쓰이는 시대에는, 카드로 팔려가지 않는 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