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축의 역습 앞 부채 환상을 깨라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부채와 유동성에 기댄 성장의 유예가 청구한 구조적 대가다. 한미 금리 차와 100달러 유가 충격 앞에 선 한국 경제는 더 이상 미봉책으로 버틸 수 없다. 한국은행은 11월 금리 인상으로 거시건전성을 지키고, 정부는 연명 대출을 중단해 질서 있는 부채 구조조정에 착수해야 한다.
인플레이션의 재점화는 통화 당국의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부채와 유동성에 기대어 연명해 온 구조적 개혁 지연이 부른 필연적 청구서다.
착시를 걷어낸 통화 정책의 본질
지난 9월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며 정책금리를 연 3.75~4.00%로 끌어올렸다. 2023년 7월 이후 3년 2개월 만에 긴축으로 회귀한 결정을 두고 시장과 언론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의 불만 표출과 정치적 압박을 거스른 중앙은행의 독자 행보나 주식 시장의 일시적 동요에만 매몰되는 것이 통상적인 보도 행태다. 그러나 이러한 피상적 접근은 사태의 본질을 가린다. 배럴당 100달러에 달하는 국제유가 급등과 고금리 속에서도 유지되는 소비 지출은, 부채와 유동성으로 지탱해 온 경제 모델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혔음을 증명한다.
비용의 전가와 심화하는 대외 종속
통화 정책을 둘러싼 대립의 이면에는 자본과 권력, 계층 간의 첨예한 비용 외주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정치 권력과 금융 자본은 단기 경기 부양과 자산 가격 방어를 위해 저금리 유지를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부채를 동원한 부양의 단물은 자산가 계층이 독식했지만, 그 대가인 물가 앙등의 고통은 실질임금이 깎인 노동자와 금융 취약계층에게 전가되었다. 연준이 만장일치로 금리를 올린 배경에는 화폐 가치 하락을 방치할 경우 사회적 신뢰 기반 자체가 무너진다는 위기감이 있다. 미국 내부의 정책 충격파는 곧바로 달러 패권을 타고 주변부 경제로 전이되며 이중의 위험을 낳는다.
한국 경제가 마주한 현실은 더욱 엄혹하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유럽과 홍콩, 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긴축 대열에 합류하면서 한미 금리 역전 격차는 재차 확대되었다. 환율 불안과 수입 물가 상승은 국내 경제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이를 대외 변수에 의한 불가항력적 충격으로 치부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가계부채 축소와 한계기업 정리를 미룬 채 부동산 거품과 대출 만기 연장으로 시간을 끌어온 정책적 태만이 자초한 구조적 인재다.
연명 치료가 초래한 구조적 진퇴양난
한국은행이 오는 11월 추가 금리 인상을 고심하는 상황은 거시경제가 빠진 진퇴양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준금리를 올려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자니 막대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의 연쇄 부실이 터져 나올 위험이 크다. 반대로 내수 부진을 이유로 금리를 동결한다면 환율 급등과 100달러 유가가 결합한 수입 물가 충격이 서민 경제를 덮치고 자본 유출을 촉발한다. 어느 쪽이든 막대한 비용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나태한 양비론이나 절충안은 출구가 될 수 없다.
단기 유동성 지원이나 정책금융 확대를 통한 미봉책은 수명을 다했다. 상환 능력을 상실한 차주와 부실 사업장에 연명 치료를 제공하며 손실 인식을 미루는 행정 편의주의는 금융 시스템의 기초체력을 갉아먹었다. 부실 채권을 정상으로 둔갑시키는 만기 연장 조치는 혁신 자본의 형성을 가로막고 금융 자원이 비생산적 자산에 묶이게 만들었다. 연준의 긴축 복귀는 더 이상 부채 돌려막기로 시간을 벌 수 있는 통화적 여력이 소진되었음을 엄중히 통보하고 있다.
고통 분담과 근본적 구조조정의 결단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본질적 질문은 어떻게 고통 없이 위기를 넘길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대가를 치르며 부채를 청산할 것인가다. 모든 이해당사자가 상처 하나 입지 않고 거대한 긴축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무책임한 낙관론을 멈추고 누적된 부실을 감내 가능한 질서 속에서 정리하는 구조조정의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단기적 경기 둔화의 공포에 굴복해 체질 개선의 기회를 놓친다면 장기 침체와 화폐 가치 추락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주체별 책임과 행동을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통화 가치 수호와 금융 불균형 해소를 위해 11월 기준금리 인상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무분별한 특례 대출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에 대한 보증 연장을 즉각 중단하고 엄격한 옥석 가리기에 착수해야 한다. 정치권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드는 금리 인하 압박을 멈추고 부채 청산 과정에서 탈락하는 취약계층을 보호할 사회안전망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 부채를 청산하는 고통을 마주하지 않는 경제에 미래는 없다.
- 1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민주적 통제 사이의 길항 관계:
고려할 관점물가 안정을 위한 중앙은행의 독자적 금리 인상이 선출 권력의 경기 부양 공약이나 대중의 이자 부담 완화 요구와 충돌할 때,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통화 정책의 독립성이 엘리트 관료적 독단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면서도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 압박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균형점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 2
기축통화 패권과 신흥·수출국의 통화 주권 한계:
고려할 관점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가 초래하는 글로벌 긴축 충격 속에서, 한국과 같은 대외 의존형 경제가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정책 수단은 무엇인가? 금리 격차 확대로 인한 자본 유출 위험과 국내 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붕괴 위험 사이에서 독자적인 통화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거시건전성 정책의 실효성을 짚어보아야 한다. - 3
질서 있는 구조조정과 사회적 비용 분담의 원칙:
고려할 관점부동산과 한계 기업에 누적된 부실을 정리할 때 발생하는 단기적 고용 충격과 금융 부실을 우리 사회가 어떤 원칙하에 수용하고 배분해야 하는가? 부실 차주의 도덕적 해이를 엄단하는 시장 규율 확립과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공적 개입 사이에서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손실 분담 모델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보고 계신 페이지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이메일은 선택입니다.
/opinion/e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