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 착시 뒤에 숨은 위험의 외주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은 내수 방어가 아닌 부실 자산 거품의 연명책에 불과하다. 밖으로는 고유가와 대외 긴축 압박이 거세지는데 저금리에 안주함으로써 발생하는 고환율과 수입 물가의 비용은 취약계층에게 외주화되고 있다. 부채 주도 성장의 파탄을 직시하고 엄정한 통화 정상화와 선제적 부채 구조조정으로 위기의 뇌관을 해체해야 한다.
착시된 통화정책과 해체해야 할 민생 프레임
기준금리 동결이 지키는 것은 서민의 민생이 아니라 부동산과 부실 자산의 기득권 거품이며, 그로 인해 증폭되는 환율과 수입 물가의 가혹한 청구서는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외주화되고 있다.
지난 9월 14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1.50%로 동결하자, 시장과 언론의 담론은 일제히 '내수 침체를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완충'이라는 안도 섞인 해석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는 대외적 실물 충격과 구조적 위기를 은폐하기 위해 동원된 전형적인 프레임의 착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송유관 폐쇄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8달러대로 치솟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일본은행이 추가적인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글로벌 긴축의 끈을 조이는 현실에서 단행된 동결은 결코 능동적인 정책 판단이라 부를 수 없다. 그것은 통화 당국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거시적 규율 확립의 책임을 유예하고, 누적된 부실을 시장의 자생적 조정 기제 밖으로 밀어내며 시한폭탄의 초침을 늦춘 지연술에 지나지 않는다. '경기 둔화 방어'라는 앙상한 명분 뒤에는 취약한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수술하기를 거부하는 정책적 비겁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자산 거품의 온존과 위험의 비대칭적 외주화
표면적으로 저금리 기조 유지는 이자 부담에 짓눌린 서민과 한계 차주를 보호한다는 공공선으로 치장된다. 그러나 이 정책적 선택이 낳는 실질적인 이익과 위험의 배분은 철저하게 계급적이며 비대칭적이다. 초저금리 유동성이 지탱하는 실체는 서민의 안정적 삶이 아니라, 무리한 차입으로 연명하는 한계 기업과 막대한 부채로 부풀려진 부동산 자산 기득권의 평가이익이다. 반면 미국과의 금리 역전 압박 속에서 원화 가치가 불안정해지고 108달러대 고유가가 촉발하는 수입 물가 폭등의 직격탄은 노동 소득만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임금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의 장바구니로 곧장 떨어진다. 자산 소유 계층은 인플레이션 방어와 부채의 실질 가치 하락을 통해 자산을 보존하는 반면, 실질임금이 삭감된 취약계층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일각에서는 대형 반도체 기업들의 이익 개선에 힘입어 내년 법인세 수입이 15년 만에 소득세를 추월할 것이라는 단편적 수치를 들어 낙관론을 유포한다. 그러나 특정 수출 대기업의 반짝 실적이 국민 대다수의 실질 구매력 붕괴와 내수 파탄을 상쇄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러한 지표는 착시를 조장하여 부채에 중독된 거시경제의 근본적 병폐를 가리는 방패막이로 악용될 뿐이다. 자산 가격 방어를 위해 감행된 금리 동결의 위험과 비용이 사회 전체의 환율 불안과 물가고라는 이름으로 가장 방어력이 취약한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외주화되는 구조적 모순을 직시해야 한다.
부채 주도 성장의 임계와 미봉책의 필연적 파탄
금리를 올리면 차주가 파산하고 내리지 않으면 환율과 물가가 폭발한다는 식의 기계적 양비론은 지적 나태의 소산이다. 이러한 진단은 지난 수년간 부동산 경기 부양과 유동성 중독을 방치해 온 정책 실패의 본질을 '풀 수 없는 딜레마'로 둔갑시켜 면죄부를 부여한다. 현 상황의 비극은 선택지가 좁아서가 아니라, 갚을 수 없는 부채를 끊임없이 새로운 빚으로 돌려막아 온 부채 주도 성장 모델이 마침내 물리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부실을 털어내지 않고 유동성 공급과 만기 연장이라는 단기 진통제로 연명하려는 행정 편의주의는 필연적으로 더 거대한 시스템 붕괴를 배태한다.
외부에서는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고물가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 보폭을 넓히고 있는데, 오직 한국만이 1.50%라는 비정상적 저금리에 안주하며 자산 거품의 연착륙을 꾀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역주행이다. 대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환율 방어와 자본 유출 방어라는 방파제를 허물면서까지 지켜야 할 부채의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형적인 통화정책으로 시간만 번다고 해서 사라질 부실이 아니며, 청산되지 않은 잠재 부실은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을 따름이다.
고통의 연기인가 분담인가, 주체적 책임을 결단하라
공론장이 지금 마주해야 할 본질적 질문은 '언제 다시 저금리의 단맛을 볼 것인가' 따위의 환상이 아니라, '누적된 부실을 털어내는 필연적 고통을 누가, 어떤 원칙으로 분담할 것인가'라는 차가운 결단이다. 한국은행은 자산 시장의 눈치를 살피며 금융 안정을 구실로 행하는 통화 동결을 중단하고, 대외 거시 환경과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설립 목적에 맞게 금리 정상화의 보폭을 결단력 있게 넓혀야 한다. 통화 당국이 시장의 가격 신호를 왜곡하는 주범이 되어서는 정책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정부는 만기 연장과 이자 유예 같은 미봉책으로 부실 자산의 수명을 연장하는 금융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즉각 벗어나야 한다. 채무 상환 능력을 상실한 한계 차주에 대해서는 선제적인 워크아웃과 채무 조정을 단행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의 우선순위를 취약계층의 생계 안전망 확충에 재배치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권은 기득권 담보 대출에 안주해 온 안이한 영업 관행을 탈피하여 손실 흡수 능력을 자본 확충으로 증명해야 하며, 정치권은 단기 표심을 겨냥한 무책임한 대출 완화 압박을 중단하고 부채 감축을 위한 구조 개혁 입법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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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정책의 딜레마와 사회적 비용의 분담: 대외 긴축 압박과 고유가 속에서 단행되는 기준금리 동결은 단기적으로 금융 차주의 파산을 유예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고환율과 수입 물가 상승을 유발하여 국민 대다수의 실질소득을 잠식한다. 이러한 통화정책의 비용 전가 구조 속에서 중앙은행이 우선해야 할 공적 가치는 자산 시장의 충격 완화인가, 아니면 전체 국민의 화폐 구매력과 물가 안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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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개방도와 통화 주권의 실질적 한계: 주요국들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긴축 기조를 강화하고 에너지 공급망 충격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이 유지할 수 있는 독자적 완화 정책의 물리적 한계선은 어디까지인가? 환율과 외환보유액의 변동성이 확대될 때 우리가 치러야 할 거시경제적 대가는 과연 내부 경기 방어 효과보다 작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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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구조조정의 회피와 세대 간 불평등: 부실을 청산하지 않고 저금리와 정책 금융으로 연명시키는 행위는 기성세대가 형성한 자산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청년층과 미래 세대에게 물가고와 국가 채무 부담을 떠넘기는 세대 간 자원 수탈이 아닌가? 부채 축소(디레버리징)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단기적 경기 침체의 고통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정의롭고 공평하게 분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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