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관료주의가 은폐하는 물가 안정의 착시

물가 안정이라는 기술적 명분 뒤에서 긴축의 파괴적 비용을 사회적 약자에게 비대칭적으로 전가하는 행태를 멈추지 않는 한 거시경제의 건전성은 허구에 불과하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3.00%로 연속 인상하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주류 담론은 이를 고삐 풀린 물가를 잡기 위한 불가피한 결단이자 거시경제 안정을 지키는 정석적 처방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인플레이션의 성격과 긴축이 초래하는 파괴적 귀결을 교묘하게 가리는 거시경제학적 탈정치화에 불과하다. 지금의 물가 압력은 가계의 과도한 소비가 아니라 지정학적 고유가와 공급망 교란에서 비롯된 외생적 충격이다. 통화당국이 내세우는 선제적 대응은 복합 위기의 원인을 오판한 채 손쉬운 금리 인상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정 편의주의적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금융 자본의 잔치와 서민에게 외주화된 긴축 비용

금리 인상이라는 단일 처방의 이면에는 왜곡된 비용 배분의 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9월 15일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일시 5.04%대로 치솟고 통화 긴축 압박이 거세지자, 통화당국은 외환시장 안정과 자본 유출 방지를 앞세워 기계적으로 금리를 올렸다. 하지만 이 긴축의 대가는 사회 전반에 공평하게 분담되지 않는다. 고금리 환경에서 대형 금융기관은 예대마진 확대로 막대한 이자 이익을 거두고 자산가는 고수익 채권으로 부를 불린다. 반면 가파르게 치솟는 원리금 상환 부담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주체는 저소득 한계 차주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통화당국 내부에서도 취약계층의 부담 우려가 거론되었으나, 이는 물가 안정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부수적 피해로 손쉽게 치부된다. 거시 지표의 안정이라는 가상의 공공선을 위해 약자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리는 행태는 불가피한 희생이 아니라 명백한 정책적 배제다. 인플레이션 억제의 혜택은 금융 자본과 자산 계급이 독점하고, 경기 위축과 가계 파산의 고통은 가장 취약한 계층으로 전가된다. 이는 위기와 고통을 사회의 가장 낮은 곳으로 떠넘기는 잔인한 경제적 외주화에 다름 아니다.

파산과 침체 사이에서 공전하는 정책적 한계

물가도 잡고 취약계층도 돌보자는 식의 나태한 절충론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공급 측 충격으로 유발된 물가 상승을 수요 억제 수단인 금리 인상만으로 잡으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서민 경제의 고사를 동반한다. 금리를 올려 소비를 억누르면 지표상 물가는 일시적으로 잡힐지언정 가계의 소득을 파탄 내고 골목 상권을 붕괴시키는 파멸적 대가를 치른다. 더구나 재정당국이 감세 기조에 갇혀 안전망을 축소하는 상태에서 가해지는 긴축은 양극화의 심연을 파헤칠 뿐이다. 제도적 모순을 외면한 채 강행되는 금리 일변도의 통화정책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불평등한 희생을 멈추기 위한 사회적 분담의 조건

공론장이 마주해야 할 진정한 선택은 명확하다. 우리는 거시 통계의 안도를 얻기 위해 누구의 삶을 희생시키고 있으며, 그 무책임한 전가의 대가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한국은행은 기술적 수사 뒤로 숨지 말고 긴축이 야기하는 불평등 심화를 직시하며 취약차주를 위한 선별적 채무 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재정당국은 재정 건전성 도그마를 깨고, 고금리 체제에서 금융권이 누린 초과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수하여 한계 계층의 채무 재조정과 안전망 확충에 투입해야 한다. 금융 자본 역시 취약계층의 고혈로 일군 이자 장사를 멈추고 부실 채권 탕감과 금리 인하 요구권 수용을 통해 상생 책임을 져야 한다.

더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

시사 이슈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심층 토론 질문 (Thinking Points)

  1. 1

    공급 측 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 시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은 정당한가?

    고려할 관점
    기대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를 막고 대외 금리차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과 환율 불안을 차단하기 위해 단기 경기 둔화를 감수하더라도 선제적 금리 인상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 신중론적 관점: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망 충격은 금리 인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유효수요만 파괴하여 실물경제 침체와 취약계층의 한계 상황을 가속화한다는 비판적 시각이다.
  2. 2

    고금리 환경에서 발생한 금융권의 초과 이익은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
    기준금리 변동에 따른 예대마진과 이자 수익은 시장 위험을 부담한 민간 기업의 정당한 영업 성과이므로, 인위적인 이익 환수나 가격 개입은 시장 질서를 교란한다는 입장이다. - 공적 책임 관점: 금융기관은 국가의 인가와 공적 안전망 보호 아래 독점적 이익을 누리고 있으므로, 고금리로 고통받는 차주들의 부담 완화와 부실 채무 재조정에 초과 이익을 환원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3. 3

    거시적 물가 안정과 미시적 민생 보호 사이의 바람직한 정책 조합은 무엇인가?

    고려할 관점
    국가 신용도 방어와 미래 세대 부담 경감을 위해 통화 긴축에 발맞추어 재정 지출도 엄격히 통제해야 하며, 인위적인 재정보조는 물가를 자극한다는 견해다. - 적극적 완충망 관점: 통화정책이 긴축으로 선회할수록 발생하는 불평등과 분배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재정은 취약계층을 겨냥한 맞춤형 지원과 사회안전망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