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원칙의 후퇴, 다중 안보 위기의 시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내 회담을 예고하며 북한이 57개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처음 공개했지만, 비핵화가 목표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피해 원칙 후퇴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날 러시아는 키이우에 대규모 미사일 공습을 가해 12명이 사망했고, 트럼프는 이란에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예고했다.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화와 대만의 사상 최대 국방예산 편성도 역내 긴장을 높인다. 한국은 비핵화 원칙과 한미일 공조를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안보 채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연내 만날 것이라고 밝히면서 북한이 57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처음으로 구체적 숫자를 공개했다. 그러나 비핵화가 여전히 대화 재개 목표인지 묻는 질문에는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며 답을 피했다. 이는 기존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원칙이 사실상 후퇴하는 신호로 읽힌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듯한 발언은 동북아 비확산 체제와 한미동맹의 억지력에 중대한 도전이다.
같은 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겨냥해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드론을 동원한 몇 시간에 걸친 야간 공습을 감행해 최소 12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 방공망의 허점을 노린 공격은 전쟁이 장기화하며 민간인 피해가 구조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 안보의 균열은 미국의 대서양 안보 공약에 대한 의구심과 맞물려 더욱 심화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가장 강력한 경제 작전”을 예고하며 제3국 2차 제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란산 원유 수출과 금융 거래를 차단하는 조치는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고,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란 전쟁발 에너지 위기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인도·태평양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 산호초 구역을 대규모 인공섬으로 바꾸고 군함 정박이 가능한 항만을 건설하며 군사적 거점을 확보했다. 대만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압박이 커지자 2027년 국방예산으로 사상 최대인 1조1,200억 대만달러(약 350억 달러)를 편성했다. 이는 역내 군비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중국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왕이 외교부장의 회담을 통해 5년 만에 안보실장급 채널을 복원했다. 복잡한 안보 환경에서 대화 채널 유지는 필요하지만, 북핵 문제와 남중국해 군사화 등에서 원칙 없는 타협은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국제 질서는 냉전 이후 유지돼 온 규범과 동맹의 구심력이 약화하며 다중 위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양상이다. 한국은 비핵화 원칙을 분명히 하고 한미일 공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소통 채널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접근이 ‘핵 동결’이나 ‘군축 협상’으로 변질될 경우 한반도 비핵화의 명분은 물론 동맹의 신뢰까지 훼손될 수 있다.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국제사회에 재확인하고, 실질적 억지력 강화와 외교적 대안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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