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에 따르면 9월 5일 기준 누적 수출액이 7094억 달러를 기록하며 불과 248일 만에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미국, 중국, 독일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연간 수출 1조 달러 고지에 올라설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그러나 이 기록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섣부른 낙관보다 냉정한 위기의식이 앞선다.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화려한 통계가 특정 첨단 분야의 독주에 기댄 착시일 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구조적 침체를 가리는 장막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기록을 견인한 동력은 인공지능(AI) 설비투자 확대에 힘입은 반도체 수출의 폭발적인 증가세다. 반도체가 기록적인 실적을 올리며 전체 지표를 견인하는 사이, 주력 산업인 자동차 수출은 6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첨단 IT 품목과 전통 제조업 사이의 성장 격차가 극단으로 벌어지면서 한국 경제를 지탱해 온 다변화된 수출 포트폴리오의 균형추가 무너지고 있다. 특정 품목의 호황이 다른 기간산업의 쇠퇴를 가리는 외양에 안주한다면 생산과 고용을 책임지는 실물경제의 기초체력은 소리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반도체 호황을 지탱하는 글로벌 AI 투자의 지속성마저 안심하기 어렵다. 부채 조달을 지렛대 삼아 팽창해 온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가 과잉 투자 논란 속에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경우, 단일 품목에 의존하는 한국 수출은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여기에 최근 가파른 원화 가치 절상과 주요국의 통상 압박까지 가세한다면 외부 충격을 분산할 완충 장치는 전무한 실정이다. 한 품목의 사이클 변동에 국가 경제 전체가 휘청이는 구조는 지속 가능한 번영을 담보할 수 없다.

정부와 산업계는 수출 1조 달러라는 양적 숫자에 도취되지 말고 산업 생태계의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반도체 일변도의 착시에서 벗어나 미래 먹거리 품목을 다변화하고, 경쟁력이 약화된 주력 제조업의 기술 고도화와 공급망 재편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수출의 양적 팽창보다 중요한 것은 대외 충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산업 포트폴리오다. 정부는 특정 산업 편중에 따른 취약성을 극복할 종합 산업 전략을 조속히 가동해야 한다.

더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

시사 이슈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심층 토론 질문 (Thinking Points)

  1. 1

    단일 산업 편중 성장과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의 위험성

    고려할 관점
    첨단 반도체 산업의 호황이 경제 지표 전반을 개선시키는 반면, 여타 전통 제조업(자동차·철강 등)의 경쟁력 약화를 가리는 구조적 모순을 어떻게 진단해야 하는가? 특정 산업 독주가 국가 경제의 회복탄력성에 미치는 장단점을 비교해 보라.
  2. 2

    글로벌 기술 투자 사이클의 변동성과 산업 정책의 역할

    고려할 관점
    부채에 기반한 글로벌 AI 투자 붐이 둔화될 때 발생할 대외 충격에 대비하여, 국가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선택과 집중'을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정책 금융과 보조금을 통해 위험 분산형 다변화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하는가?
  3. 3

    제조업 구조 변화와 고용·소득 양극화 대응 방안

    고려할 관점
    자본·기술 집약적 첨단 산업의 성장이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전통 제조업의 일자리 감소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분배의 양극화 문제를 국가는 어떤 조세 및 재교육 복지 제도로 해결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