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이 재정 팽창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9월 1일 의결된 820조9000억 원 슈퍼예산은 반도체 호황이라는 경기 순환 수입으로 구조적 지출 팽창을 정당화한다. 나랏빚이 1500조 원에 달하고 2030년 지출이 1000조 원을 넘는 상황에서, 국회는 세입 전망의 경기 민감도를 검증하고 재정 준칙을 입법화해야 한다.
820조9000억 원. 9월 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내년도 예산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에 나섰던 2009년의 10.6%를 뛰어넘어 12.8%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 숫자가 지닌 위험을 압축한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재정 여력을 AI·첨단산업 성장동력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기 순환 수입으로 구조적 지출을 굳히는 것은, 호황이 걷히고 나면 그대로 남는 씀씀이를 만드는 일이다.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이다. 불과 3년 전인 2023년 혹독한 불황이 있었다. 반도체 수출이 466억 달러 신기록을 세웠다는 수치가 정부 낙관론의 외피를 두껍게 만들지만, 그 낙관론을 820조 원 지출의 설계 전제로 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랏빚이 내년 1500조 원에 달하고, 이재명 정부 마지막 해 지출이 1000조 원을 넘으리라는 전망이 이미 나온다. 미래대응기금 162조3000억 원 신설 역시, 그 재원이 지속 가능한 세입 구조 위에 서 있는지 국회가 검증하기 전까지는 재정 건전성의 또 다른 부담이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착공과 AI 성장동력 투자의 방향 자체는 옳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그 규모와 속도가 호황 고점에서 결정된다는 데 있다.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세입이 줄어도 이미 굳은 지출 구조는 그대로 남는다. 2009년을 넘어서는 이번 팽창이 당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외환위기 이후 구조개혁의 압박 없이 호황이라는 유리한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낙관의 시기에 설계된 지출 구조는 역설적으로 가장 무른 기초 위에 선다.
국회는 이번 예산 심의에서 세입 전망의 경기 민감도를 정밀하게 따지고, 반도체 수출이 꺾일 경우 어느 항목을 어떻게 삭감할지 구체적인 재정 준칙을 입법화해야 한다. 정부도 호황 기반 세입 추계의 경기 조정치를 공개하고, 하강 시나리오별 지출 조정 계획을 예산안과 함께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슈퍼예산이 미래 세대의 부담이 아닌 성장의 발판이 되려면, 그 전제가 되는 세입 낙관론의 취약성을 먼저 직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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