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보호주의, 세계 경제 분절화 심화
미국의 반도체 표적관세 예고와 대미 투자 압박은 세계 경제가 지정학적 경쟁과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절화되는 신호이다. 드론 관세 부과, 국제유가 상승, 미 무역적자 확대 등은 보호주의 심화와 공급망 재편 압력을 가중한다. 삼성·SK하이닉스의 호실적은 특정 기술 분야의 호황일 뿐, 폭스바겐의 대규모 감원 등 전통 산업의 어려움은 전반적인 경기 둔화를 시사한다. 월러 연준 이사의 금리 동결 시사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과 금융 시장 불안정성은 여전하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공급망 다변화, 핵심 기술 초격차 유지, 능동적 통상 외교를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위기 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핵심 수출품목인 반도체에 표적관세를 예고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공장 건설 및 알래스카 LNG 개발 등 대미 투자를 압박하는 움직임은 단순한 통상 마찰을 넘어선다. 이는 경제 안보를 명분으로 한 공급망 재편 압력이자, 세계 경제가 지정학적 경쟁과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분절화되는 새로운 국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의 반도체 관세에 대해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게 협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압박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러한 보호주의 기조는 반도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9월 3일(현지시간) 발효된 드론 및 관련 부품에 대한 최대 100% 관세 부과는 미국 공급망 구축이라는 명분 아래 특정 국가를 배제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에 이란의 쿠웨이트 등 걸프 지역 동맹국 공격 지속으로 국제유가가 브렌트유 기준 97달러를 돌파하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미국의 7월 무역적자가 886억 달러로 지난해 3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한 것 또한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보호주의 강화의 배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과 D램 가격 상승에 힘입어 3분기에도 실적 호조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은 긍정적이나, 이는 인공지능(AI) 기술 혁신이라는 특정 분야의 호황일 뿐, 전반적인 무역 환경 악화와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 오히려 AI 스타트업 ‘씽킹 머신즈’가 400억 달러의 기업 가치로 10억 달러 투자를 유치하는 등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될수록, 핵심 기술을 둘러싼 보호주의는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반면 폭스바겐이 판매 부진과 중국 경쟁 심화로 최대 5만 명 감원 및 공장 폐쇄를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계획하는 것은 전통 산업의 구조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각국 정부의 자국 산업 보호 압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이러한 경제 분절화와 지정학적 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통화 정책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져 글로벌 경제의 복잡성은 더욱 증폭된다.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이어질 경우 9월 기준금리 동결을 지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장에 단기적인 안도감을 주었으나, 미 10년 국채금리가 5%에 육박하고 연준 내 매파와 비둘기파의 딜레마가 지속되는 상황은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한다. 블랙스톤의 430억 달러 규모 사모 신용 펀드에서 투자자들의 자금 유출 통보가 이어져 출금 제한 조치를 유지한 것은 금융 시장의 취약성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금리 인상 사이클의 끝이 보인다고 해도,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과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은 보호주의 심화와 맞물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경제는 이러한 다층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단기적인 시장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 체질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특정 국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망 다변화 및 자립화 노력을 가속화해야 하며, 핵심 기술 분야의 초격차를 유지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또한, 능동적인 통상 외교를 통해 보호주의 파고 속에서 국익을 지키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지속해야 한다. 기업들 역시 지정학적 리스크를 상수로 인식하고 투자 및 생산 전략을 재편하며, 위기 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세계 경제의 분절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만이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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