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공개된 한 실증 연구는 저출산 논쟁의 지형을 뒤흔들었다. 사교육이 없었다면 한국 여성 한 명이 자녀를 0.53명 더 낳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은행·경제정책연구센터(CEPR)·OECD 공동 콘퍼런스에서 발표된 이 결과는 저출산의 원인을 개인의 의지나 가치관 변화로 설명해온 기존 통념을 정면으로 깨뜨린다. 문제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 세대가 아니라, 아이를 낳으면 감당할 수 없는 비용 구조가 기다리는 사회다. 자녀 교육에서 한발 뒤처지면 계층 이동의 사다리에서 밀려난다는 공포가 한국 가계의 출산 결정을 지배하는 한, 아이를 택할 여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사교육은 학습 보충이 아니라 지위를 사고파는 시장이다. 부모는 자녀 한 명에게 가계 여력의 상당 부분을 쏟아붓고, 그래도 충분하지 않다는 불안 속에서 둘째를 포기한다. 0.53명이라는 숫자는 추상적 평균이 아니라 수십만 가정이 각자의 손익 계산 끝에 내린 결정의 합산이며, 그 무게를 정책이 오래 외면해왔다. 사교육비 부담이 출생아 수를 직접 억제한다는 사실이 국제 연구 무대에서 실증된 이상, 이를 저출산 정책의 핵심 변수로 다루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에 가깝다. 하루 임대료 1,000원짜리 청년주택 공급이 무의미하지는 않지만, 주거비보다 사교육비를 먼저 두려워하는 부모들에게 그것은 보조적 처방에 불과하다.

역설은 정부의 행보에 있다.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을 추진하면서, 실제 교육비와 연동되는 비율은 8.8%에 불과한데 학령인구를 산식에 35%나 반영하겠다는 논리가 시·도 교육감들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공교육 재정이 줄면 학교의 질이 떨어지고, 그 빈자리는 사교육이 채운다. 저출산 대책을 한 손으로 내놓으면서 다른 손으로 사교육 수요를 키우는 구조를 정부 스스로 설계하고 있다.

정부는 교부금 개편 논의에 앞서 사교육 의존 구조를 실질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공교육이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 때라야 부모는 비로소 둘째를 선택지에 넣는다. 지위 경쟁이 출산율을 갉아먹는다는 사실이 실증된 지금, 국가가 손을 대야 할 곳은 현금 지급의 규모가 아니라 그 경쟁을 강제하는 구조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