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9월 1일 밤, 전국 시도경찰청장 18명 가운데 14명을 한꺼번에 교체하는 인사가 전격 단행됐다. 수장이 없는 조직에서 이 규모의 재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경찰 인사가 조직 내부의 원칙과 절차가 아니라 외부 의지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은 인사 결과의 적부 이전에 인사 구조의 문제다.

새로 임명된 경찰청 차장은 공석인 청장 대행까지 겸임하게 됐다. 치안 서열 2위 자리를 채우면서 동시에 최고 지휘권까지 부여받은 것인데, 이는 청장이 정식으로 임명되기 전에 치안 지휘 라인 전체를 사실상 확정해버린 것과 다름없다. 향후 경찰청장이 취임하더라도 이미 완성된 인사 구도 안에서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선행된 것이다. 새 청장의 인사권은 그가 자리에 앉기 전부터 이미 제약된 셈이다. 당초 치안정감 승진 내정자로 알려졌던 제주경찰청장이 이번 인사에서 돌연 배제된 것도 석연치 않다. 어떤 기준에 따라, 누가, 언제 그 결정을 번복했는지가 공개되지 않는 한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향피제 전면 적용이라는 명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연고지 토착 비리를 끊고 지역 유착을 방지한다는 취지는 원칙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원칙이 맞다고 해서 과정까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한밤중에 전격 발표하는 방식은, 사전에 충분히 검토되고 내부 공람을 거친 인사가 아니라 기습적으로 확정된 결정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경찰 조직 내부의 수용성을 해치는 동시에 시민의 치안 신뢰도 흔든다. 투명한 인사란 왜 이 사람이 이 자리에 가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는 인사다. 그 설명이 생략되면 명분은 장식에 머물고, 인사는 권력의 도구로 읽힌다.

정부는 경찰청장을 조속히 임명하고, 이번 인사의 결정 경위와 평가 기준을 국회와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한밤중 기습 인사라는 방식 자체가 이미 설명의 부담을 자초했다. 수장이 없는 조직에 지휘 라인만 먼저 채우는 방식은, 경찰의 독립성보다 통제의 편의를 앞세우는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들인다. 경찰이 법치의 집행자인지 정치의 도구인지는 비상 상황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의 인사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