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총성이 연준 결정을 좌우한다
미·이란 교전 재개로 브렌트유가 배럴당 90.49달러까지 치솟으며 인플레이션 공포가 되살아났다. 연준 내 매파의 9월 금리 인상론이 힘을 얻고 글로벌 채권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지정학 충격이 통화정책 경로를 반복적으로 교란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유가 충격 시나리오를 금리 논의의 전면에 배치해야 한다.
8월 31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이 약 한 달 만에 다시 교전을 재개했다.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해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배럴당 90.49달러로 치솟았고, 뉴욕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이 사태를 지정학 충격에 따른 일시적 시장 조정으로 읽는다면 구조를 놓치는 것이다. 중동의 총성이 단순히 주가를 눌렀다기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조율해온 금리 인하 경로를 정면에서 뒤흔들고 있다.
유가가 90달러를 넘어서자 시장의 인플레이션 경계심은 즉각 되살아났다. 연준 내 매파 인사로 분류되는 워시가 9월 금리 인상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해석이 시장에 퍼졌고, 이미 출렁이기 시작한 글로벌 채권시장의 혼란은 한층 깊어졌다. 채권시장의 동요는 단순한 수익률 상승이 아니다. 금리 인하 기대를 논거로 삼아 고평가를 정당화해온 위험자산 전반의 가격 구조가 흔들린다는 신호다. 유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고, 그 압력이 금리 인하 기대를 지우며,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조정을 받는 이 연쇄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작동했다. 9월 들어 월가의 선물지수에 하락 압력이 가해진 것도 그 연쇄의 연장이다.
일부에서는 엔비디아를 비롯한 반도체주가 이날 오히려 상승했다는 사실로 시장의 복원력을 말한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외국인·기관·개인이 동시에 매도에 나선 장에서 코스피를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두 방어선이 지속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낙관이 아니라 착각이다. 반도체주의 강세는 AI 수요라는 별도의 내러티브에 기댄 것이고, 자사주 매입은 시장의 유기적 수요가 아니라 기업 자본력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지지하는 행위다. 유가 충격이 장기화해 실물 비용 압박이 누적되면, 두 방어선은 동시에 한계에 부딪힌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연준의 피벗 시점을 핵심 변수로 삼아 통화정책 방향을 가늠해왔다. 그런데 연준의 경로 자체가 중동의 전선이라는 외생 변수에 의해 반복적으로 교란된다면, 한국은행은 연준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유가 급등 시나리오가 국내 물가와 경상수지에 미치는 충격을 금융통화위원회 논의의 전면에 올려야 하고, 정부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공론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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