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연산의 폭발적 가속이 물질적 실재를 규명하는 물리 실험실의 병목을 결코 대신할 수 없다.

가상 연산의 환상이 가린 과학의 물적 위기 언론은 연일 '인간 없는 제약사'가 출현했다거나 인공지능이 수만 명 분량의 후보물질을 설계했다며 환호성을 지른다. 디지털 화면 안에서 화합물이 순식간에 조합되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목도한 사회는 과학 연구의 모든 난제가 알고리즘의 연산력 앞에서 일거에 해소될 것이라는 기술적 착시에 빠져든다. 그러나 2026년 9월 19일 구글 딥마인드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연구진이 내놓은 공동 보고서는 과학자들의 인공지능 활용이 폭발적으로 늘었음에도 물리적 실험실의 병목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는 서늘한 실재를 드러낸다. 가상 모델이 가설을 양산하는 속도와 현실의 물질계가 이를 입증하는 속도 사이의 괴리는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전례 없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이 소비하는 계산적 낙관론은 자연이라는 복잡계를 온몸으로 대면해야 하는 물리적 검증의 고통스러운 무게를 공론장에서 지워버리는 위험한 프레임이다.

연산 자본의 독점과 실물 검증의 위험 외주화 이러한 프레이밍 왜곡의 이면에는 거대 기술 자본과 플랫폼 기업의 명확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빅테크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그래픽 연산 장치를 앞세워 가상 시뮬레이션 시장을 장악하고 천문학적인 기업 가치를 부풀린다. 반면 수개월 동안 세포를 배양하고 복잡한 단백질 변성을 추적하며 무수한 실패를 감내해야 하는 '()'의 위험과 물리적 비용은 대학과 공공 연구소의 열악한 연구실로 고스란히 외주화된다. 9월 18일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가 막대한 기대를 모았던 루게릭병 표적 항체 임상 2상을 실패로 매듭짓고 개발을 전면 중단한 사태는, 생명 현상의 비선형성이 가상 설계의 오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적나라하게 입증한다. 단물은 가상 모델을 독점한 연산 플랫폼이 챙기고, 물질적 실패에 따른 자원 낭비와 기회비용은 현장 연구자와 환자 집단이 온전히 떠안는 기형적 수탈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가설의 인플레이션과 실험 생태계의 공동화 기계적 중립론자들은 인공지능의 가설 생성력과 인간의 물리적 실험이 결합하면 시너지를 낼 것이라는 안이한 절충안을 내놓는다. 그러나 현실의 왜곡된 자원 배분 구조는 그러한 나태한 조화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정부와 연구 지원 기관들이 고성능 컴퓨팅 바우처와 클라우드 이용료 지원 같은 손쉬운 디지털 전환 사업에만 재정을 쏟아붓는 사이, 정작 실물 반응기를 돌리고 화합물을 정제할 기초 실험 장비와 숙련된 실험 인력은 만성적인 예산 고갈에 방치된다. 그 결과 초래된 구조적 모순이 바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의 인플레이션'이며, 컴퓨터 안에서 수억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친 후보물질이 특허로 쏟아져 나와도 이를 실증할 물리적 인프라는 속절없이 공동화된다. 실물 실험의 뒷받침 없는 가설의 범람은 과학계 전반의 재현성 위기를 심화시키고 공공 연구 자원의 심각한 낭비만을 부추긴다.

연산 보조금을 삭감하고 물리 실험 인프라를 재건하라 공론장은 이제 가상 연산의 눈부신 속도가 물질 연구의 터전을 황폐화하는 역설적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과학 주권은 데이터센터의 칩셋 개수가 아니라 시험관과 배양기 속에서 물질과 사투를 벌이는 현장 실험실의 단단한 복원력에서 나온다. 정부는 실효성 없는 클라우드 연산 보조금 지급을 전면 재검토하고, 기초 물리·화학·생명과학 실험실의 노후 장비 교체와 전문 테크니션 육성에 공공 예산을 우선 배분해야 한다. 규제 당국과 학술 기구는 컴퓨터 모델링만으로 포장된 연구 결과물의 신약 및 특허 심사 기준을 대폭 강화하여 실물 검증 없는 가설의 난립을 엄격히 차단해야 한다. 산업계 역시 화려한 가상 설계 마케팅에서 벗어나 실험실 데이터의 정확성을 담보할 물질 검증 파이프라인 구축에 자기 자본을 책임 있게 투자해야 한다.

더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

시사 이슈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심층 토론 질문 (Thinking Points)

  1. 1

    인공지능이 생성한 방대한 과학적 가설과 물리적 실험 인프라 사이의 불균형이 지속될 경우, 공공 연구개발(R&D) 투자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재조정되어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
    가상 연산 인프라에 대한 집중 투자가 단기적 연구 생산성을 높인다는 주장과, 실증 없는 가설 양산이 장기적으로 과학계의 재현성 위기와 자원 낭비를 심화시킨다는 비판을 비교 검토해야 한다. 대학 및 공공 연구소 내 '()' 전문 인력과 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안정적 재정 지원 모델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2

    거대 플랫폼 기업이 신약 및 신소재 가상 설계 도구를 독점하는 반면 실패 위험과 물적 검증 비용은 학계와 중소 연구기관에 전가되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해법은 무엇인가?

    고려할 관점
    플랫폼 기업이 거두는 라이선스 수익이나 기술 가치 평가의 일부를 공공 실증 인프라 기금으로 환원하도록 강제하는 방안의 타당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데이터 독점을 방지하고 알고리즘이 도출한 가설의 실물 검증 실패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규제가 시장 혁신을 위축시킬지 여부를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3. 3

    규제 당국과 학술계가 인공지능 기반 바이오·소재 연구 논문 및 특허 출원에 대해 요구해야 할 '물리적 실증의 최소 요건'은 어느 수준으로 설정되어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
    엄격한 실물 실험 데이터 제출 요구가 초기 혁신 스타트업의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위험과, 느슨한 기준이 낳을 무책임한 특허 선점 및 부실 연구 양산의 폐해를 저울질해야 한다. 물질계 검증이 지연되는 희귀 질환 치료제 개발 분야에서 가상 시뮬레이션 데이터의 증거 능력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윤리적·임상적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