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과학자 환상이 기초과학을 망친다
정부의 '리더급 국가과학기술자 20명 선발'은 과학을 개인의 메달 경쟁으로 왜곡하고 실패의 위험을 청년 연구자들에게 전가하는 전시성 오디션이다. 첨단 메모리나 인공근육 연구가 증명하듯 혁신은 보이지 않는 연구자들의 축적에서 나온다. 관료의 치적 쌓기용 선별주의를 폐기하고 실패할 자유를 보장하는 지속 가능한 풀뿌리 기초연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영웅 서사로 분식된 R&D의 관료적 착시
지난 9월 1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만 55세 이하 연구자를 대상으로 연간 1억 원씩 최대 5년간 지원하는 ‘리더급 국가과학기술자’ 20명을 선발하겠다고 공고했다. 보도들은 이를 두고 세계적 석학을 육성하기 위한 파격적인 예우이자 국가적 결단이라며 찬사를 쏟아내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 궤적을 소수 천재의 메달 획득 경쟁으로 환원하는 전형적인 프레임 왜곡이다. 기초과학과 공학의 진보는 몇몇 스타 플레이어를 발탁해 조련하는 스포츠 경기나 연예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법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언론과 정부가 합작한 이 화려한 영웅 서사는 연구 현장의 황폐화된 구조적 현실을 은폐하는 정교한 마취제다.
국가가 지탱해야 할 본령은 소수 엘리트의 화려한 단상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가 실패를 무릅쓰고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거대한 생태계의 토양이다.
실패의 외주화와 푼돈으로 치장된 전시 행정
정부가 제시한 연간 1억 원이라는 지원금은 첨단 과학 연구의 현실을 안다면 낯뜨거운 규모다. 이 액수는 나노 소재나 바이오 공학 실험실에서 박사급 전문 연구원 두 명의 인건비를 충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며, 고가 분석 장비의 연간 유지보수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렵다. 이 얄팍한 예산 배분으로 실질적인 이익을 취하는 주체는 현장의 연구자가 아니라 최소의 재정 투입으로 '국가대표 석학 20인 육성'이라는 전시성 치적을 챙기는 관료 집단이다. 지난 R&D 예산 삭감 파동으로 초토화된 연구 생태계의 비판을 무마하고,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홍보하려는 관료주의적 계산이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다.
진정한 기술적 도약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지난 9월 11일 국내 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차세대 상변화 메모리의 전력 76% 절감 기술이나, 같은 날 공표된 인공근육 구동기 연구처럼 산업 지형을 바꾸는 혁신은 특정 개인의 번뜩이는 천재성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수년 혹은 수십 년간 보이지 않는 연구실 구석에서 실패와 수정을 거듭해 온 청년 연구원들과 대학원생들의 집단적 노동이 퇴적된 산물이다. 그러나 정부의 선별적 지원책은 이들 대다수 연구 노동자의 생존 토대를 위태롭게 방치한 채, 연구 실패의 모든 비용과 위험을 개별 연구실에 떠넘기며 성과의 과실만을 손쉽게 수탈한다.
파괴적 혁신을 가로막는 오디션의 덫
일각에서는 소수 정예 엘리트 집중 육성과 연구 저변 확대가 병행될 수 있다는 안이한 절충론을 편다. 하지만 자원이 극도로 제한된 구조에서 상위 0.1%의 '검증된 승자'에게만 자원을 몰아주는 하향식 자원 배분은 필연적으로 과학의 다양성을 질식시킨다. 과학적 발견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을 먹고 자라지만, 관료주의적 심사 시스템은 언제나 관료의 입맛에 맞고 단기적으로 논문 편수를 뽑아내기 쉬운 안전한 과제에 도장을 찍는다. 만 55세 이하라는 작위적 연령 제한까지 덧씌워진 선별 제도는 학계의 중추적 허리 연구자들마저 정부 주도 서바이벌 오디션에 줄 세우며, 장기적이고 파괴적인 도전 대신 단기 지표 맞추기식 연구로 내모는 구조적 덫으로 작용한다.
미봉책에 불과한 바우처성 지원으로는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에서 단 한 걸음도 앞서 나갈 수 없다. 실패할 가능성이 99%에 달하는 고위험·고수익 연구를 기피하게 만드는 제도적 징벌 구조를 그대로 둔 채, 20명의 간판스타를 내세운다고 해서 무너진 기초과학의 사다리가 복원될 리 만무하다. 이는 연구 현장의 토양을 사막화하면서 그 위에 조화를 꽂아놓고 숲이 우거졌다고 자화자찬하는 격이다.
관료의 치적이 아닌 지속 가능한 토양을 구축하라
이제 공론장이 마주해야 할 진짜 질문은 누가 20명의 국가대표 과학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과학을 국가적 위신을 선양하는 일회성 관전 스포츠로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한 지적 탐색의 실패를 기꺼이 분담하는 공공의 인프라로 대우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선택이다. 관료의 손쉬운 치적 쌓기를 위해 연구 생태계의 허리를 분지르는 우를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전시성 갈라쇼에 불과한 20인 선별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신진 및 중견 연구자들이 10년 이상 긴 호흡으로 몰두할 수 있는 풀뿌리 기초연구 펀딩의 법적 하한선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단년도 회계 잣대와 정량적 논문 편수로 연구의 성패를 재단하는 낡은 예산 통제 방식을 폐기하고, 다년도 블록펀딩과 정성적 동료 평가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학계와 연구기관 역시 정부가 던져주는 선별적 시혜에 편승해 연구 카르텔을 온존시키는 기회주의를 버리고, 청년 연구자들의 연구 자율권과 노동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내부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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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R&D 정책에서 '소수 정예 엘리트 집중 지원'과 '광범위한 풀뿌리 연구 지원' 중 국가의 장기적 혁신 역량을 담보하는 길은 무엇인가?
고려할 관점첨단 기술 패권 경쟁에서 요구되는 전략적 초격차 기술의 신속한 선점 필요성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 원천기술을 잉태하기 위한 기초과학 생태계의 다양성 및 신진 인력 유입 기반 확보 간의 충돌. - 2
연구 실패율이 높은 혁신적 기초연구를 장려하기 위해 관료적 정량 평가(논문 편수, 특허 수)를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평가 제도는 무엇인가?
고려할 관점공공 재정 집행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담보해야 하는 행정적 요구와, 정량적 잣대가 유발하는 안전한 모방 연구 양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성적 동료 평가(Peer Review)의 공정성 확보 방안. - 3
공공 세금과 대학의 연구 인프라가 투입된 산학 협력 원천기술의 사회적 이익과 상업화 위험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고려할 관점상용화 연구에 막대한 민간 자본을 투자한 기업의 독점적 보상 권리와, 연구에 기여한 청년 과학도들의 정당한 권리 보장 및 공공재로서의 기술 환원이라는 사회적 가치 간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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