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연구의 빗장을 푼 위험한 규제 완화

정부가 9월 10일 발표한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의 벤처 창업 시 ‘사적이해관계자’ 제외 방침은 기술 사업화라는 미명 아래 공공 연구의 윤리적 보루를 허무는 위험한 발상이다. 세간의 시선과 경제계는 이를 딥테크 창업을 옥죄던 낡은 족쇄를 풀고 연구 성과를 시장에 신속히 이식할 혁신 조치라며 환호한다. 그러나 규제 혁파라는 매혹적인 수사 이면에는 국민의 세금과 공공 인프라로 축적된 국가 연구 자산을 사적 자본의 영역으로 손쉽게 이양하려는 구조적 착시가 도사리고 있다. 공공 연구기관의 본령은 눈앞의 시장 수익 창출이 아니라,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실패의 위험을 기꺼이 떠안으며 지식의 공공성을 확장하는 데 있다.

위험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모순

이번 조치의 본질은 연구자가 소속 기관의 직위와 자원을 유지한 채 자신이 세운 기업의 사익을 추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 방지 장치를 선제적으로 해체했다는 점에 있다. 연구비 집행과 공공 실험 장비 활용, 원천 특허의 독점적 사용권 설정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과 연구자 개인 회사의 사익이 충돌할 때, 이를 제어할 법적 방파제를 스스로 걷어낸 격이다. 이는 기술 개발과 인프라 유지에 들어간 막대한 매몰 비용과 실패 위험은 오롯이 납세자에게 떠넘기고, 상업적 성공에 따른 과실은 창업 연구자와 민간 벤처 자본이 독점하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를 제도화한다. 해외 유수 학술 보고서가 고발한 공공 연구의 자본 종속과 거대 컴퓨팅 비용에 따른 자율성 침해 문제는 공공 R&D가 상업주의의 논리에 무방비로 포섭될 때 어떤 왜곡이 발생하는지 똑똑히 웅변한다.

공공의 세금과 인프라로 축적된 국가 연구 자산을 사적 자본의 탈출구로 내주는 순간, 과학기술은 공공재의 지위를 잃고 시장의 종속물로 전락한다.

PBS의 파행과 상업화 드라이브의 이중 덫

연구 현장이 맞닥뜨린 비극은 뿌리 깊은 제도적 딜레마에서 기인한다. 9월 10일 공론장에서 재차 터져 나왔듯, 연구자들을 영세한 단기 과제 수주 경쟁으로 내몰며 연구 생태계를 황폐화시킨 연구과제중심제(PBS)의 구조적 모순은 수십 년째 방치되어 있다. 안정적인 기본 연구비를 확보하지 못한 연구자들은 생존을 위해 손쉬운 응용 과제에 매달려 왔으며, 정책 당국은 이 고질적인 정책 실패를 반성하기는커녕 ‘사업화와 창업’이라는 또 다른 시장 만능주의적 활로로 연구자들을 떠밀고 있다. 장기적 기초 연구의 토양을 다져주지 않은 채 규제를 풀어줄 테니 시장에서 스스로 활로를 찾으라는 식의 처방은 공공 연구의 책무를 방기하는 면피성 행정에 불과하다. 기초과학의 토대가 무너진 자리에는 단기 시세차익과 유행만을 좇는 무늬만 딥테크인 기형적 벤처들만 번성할 뿐이다.

공공성 복원과 주체별 책임의 재정립

우리가 공론장에서 마주해야 할 진정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연구자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는가’라는 수량적 실적이 아니라, ‘국가 R&D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공동체의 본질적 난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상업화의 깃발 아래 공공 연구의 윤리적 빗장을 푸는 방식으로는 진정한 딥테크 강국에 도달할 수 없으며, 오히려 국가 연구 생태계의 공동화(空洞化)를 초래할 뿐이다.

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적이해관계자 제외 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고, 공공 연구 자산의 사적 유출과 이해충돌을 엄격히 감시할 제도적 안전장치를 복원해야 한다. 국회는 지지부진한 PBS 개편 논의를 매듭짓고 차기 예산 편성과 입법 과정에서 연구자들이 초장기 원천기술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안정적 연구 예산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출연연 연구계 역시 단기 창업의 열풍에 휩쓸리지 말고 국민의 신뢰와 세금으로 지탱되는 공공 연구자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무겁게 자각해야 한다.

더 생각해봐야 할 이야기

시사 이슈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심층 토론 질문 (Thinking Points)

  1. 1

    공공 연구 성과의 산업적 확산과 공공성 수호의 제도적 균형

    고려할 관점
    출연연의 유망 연구 성과가 논문과 특허로 사장되지 않고 산업 현장으로 이전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필요성과, 공공 세금으로 축적된 원천기술과 장비가 특정 개인이나 사적 벤처의 사리사욕으로 전락하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는 공공성 원칙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조화시킬 것인가? 현행 기술료 징수와 지분 공유 모델은 공공 자산의 사유화 위험을 막는 데 실효성이 있는가?
  2. 2

    연구과제중심제(PBS) 해체와 새로운 R&D 거버넌스의 설계

    고려할 관점
    연구자들을 파편화된 과제 수주 경쟁으로 내모는 PBS를 극복하고자 할 때, 정부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연구비 배분 체계는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안정적인 기관 고유 사업비 확대가 자칫 연구 현장의 도덕적 해이나 폐쇄적 관료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하면서도, 10년 이상 소요되는 고위험·고난도 연구를 보장할 수 있는 거버넌스 평가 모델은 무엇인가?
  3. 3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 공공 과학의 독자적 영역과 윤리적 경계

    고려할 관점
    초거대 인공지능, 첨단 바이오, 에너지 전환 등 대규모 자본과 인프라가 요구되는 전략기술 분야에서 민간 빅테크의 독점력이 압도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 지배적 구도 속에서 국가 공공 연구기관이 민간에 종속되지 않고 지켜내야 할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역할은 무엇이며, 공공 과학이 사회적 안전판이자 윤리적 기준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어떤 독립적 지원 체계가 필요한가?